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부사와 에이이치 (문단 편집) === 사업가로서 === >부자를 부러워하고 이를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노력이 부족하고 의지가 약한 사람들의 행동이다.[br]행복은 자신의 힘으로 나아가 얻어낼 수밖에 없다. >---- >{{{-3 富者をうらやんでこれを嫉視するのは、自分の努力の足りぬ薄志弱行のやからのやることだ。幸福は自らの力で進んでこれを勝ち取るのみだ。}}} 대장성에서 사직한 이후 1873년 [[제일국립은행]](현 미즈호 은행)을 설립하고 초대 총재가 되었다. 그 외에 도쿄가스, 도쿄해상화재보험(현. 도쿄해상일동화재보험), 오지 제지, 전원 도시(현. [[도큐 전철]]), 지치부 시멘트(현. 태평양시멘트[* 일본 최대 시멘트기업]), [[치치부 철도|지치부 철도]], [[게이한 전기철도]], [[도쿄증권거래소]], [[기린맥주]][* 외국인이 경영 중이던 양조장을 미쓰비시가 인수할 때 주주로 참여, 이사로 활동했다. 이후 미쓰비시가 완전 인수하여 기린맥주주식회사를 설립, 현재에 이름이 되었다.], 삿포로 맥주(현. [[삿포로 홀딩스]]), 도요방적(현. 도요방적주식회사), 대일본 제당, 메이지 제당, 시부사와창고(현. 시부사와 창고주식회사) 대한제국에서는 [[경인철도합자회사]]와 [[경부철도주식회사]] 등 다양한 기업 설립에 참여했으며 그 수는 500개 이상으로 알려져있다. 메이지 시대 다른 재벌들과 달리 공공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실제로 시부사와 일족은 각 회사 지분을 최소 수 %에서 20% 이하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자신이 주장하던 도덕경제합일설의 '사리를 쫓지 않고 공익을 도모하는' 것을 평생 관철해낸다.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주위 재벌가들이 남작에 그칠 때, 자작 작위를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